심리주의; 철학을 포함하는 일반 정신과학의 여러 문제를, 인간의 심리적ㆍ주관적 과정으로 환원하여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려는 경향
내 작품을 한마디로 표현 한다면 . 그 때의나 . 이다.
‘왜’ 였을지는 모르겠으나 작업이 아닌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인간 ‘오영정’을 나는 상상해본 적이 없었으며, 내 미래에는 늘 작가 오영정이 살고 있다.
내 작업 안에서의 심리주의적 경향은,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서나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닌, 오롯이 나를 위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시작은 거창한 어떤 무엇이 아니라, 실은 ‘보이지 않는 존재하는 것들’에 관한 작은 호기심이었다. 그 작은 호기심이 지금의 내가 있는 곳까지의 길로 나를 이끌었다.
시간을 거슬러 내가 열 살이던 때였다.
어느 날, 내 오른쪽 손가락 끝이 내 왼손 끝에 아주 잠시 닿았다 떨어졌을 때, 아직 그 손끝에 남아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아주 가느다란 실들을 보았다. 마치 거미줄 같은 수많은 가닥의 실들은 내가 두 손 끝을 뗀 순간부터 아직 그대로 남아, 늘어뜨려진 채로 내 두 손 끝을 이어 존재하고 있었다 분명.
내 손끝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나뿐만이 아닌 존재하는 어떤 다른 존재를 만나 스칠 때에도, 다른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 스칠 때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느꼈다. 분명히 내게는 보였던,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었던, 셀 수 없는 그 수많은 실 가닥들은 떼어버리려 해도 떼어지지 않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붙어서, 시작이 되었던 곳으로부터의 끈을 점점 길게 늘여가며, 마치 점점 짙어지는 뿌연 안개마냥 ‘보이며 존재하는 것들’을 가려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왜’인지 그때는 몰랐지만, 내가 경험한 그 이야기로부터 파생된 궁금증들은 오래도록 늘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 후로 많은 시간을 나는, 보여지며 존재하는 모든 것들 사이에,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 무엇일까 탐구했었다. 미술작업을 하게 되면서 그 궁금증은 자연스럽게 인간들 사이의 ‘관계’나 ‘기억’에 관한 나만의 생각들을 풀어내게 하였고, 그것들은 분명히 ‘볼 수는 없지만 존재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였으며, 지극히 개인적인 ‘나’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내가 걸어온 길의 시간 위에서 나의 솔직한 이야기들은, 다양한 작업방식으로 표현되어졌다. 마치 모국어와 같이 나에게 가장 편한 소통의 방법들로 표현된 작업들은,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일반적인 주제는 아니었을 수 있으며,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개인적이지만은 않다고 점차 느끼게 되었다. 각각의 존재하는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나의 시선과 이야기의 중심은, 자연스럽게 인간의 외부에서 깊은 내부로 옮겨졌다.
인생에서 ‘작가 오영정’이 아닌 ‘인간 오영정’으로 겪어낸 수많은 갈등요소들은,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의 외부와 내부를 깊이 있게 탐구하게 하였고, 그 고민들은 고스란히 작품이라는 결실로 남아있다. 되돌아보면, 부족하고 온전하지 않음에 부끄러울 때가 많지만 그 또한 나의 과거이니 내가 살아온 시간들과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으려 매 순간 노력한다. 이렇게 내 모든 것을 낱낱이 써놓은 일기장 같은 작품을 꺼내 놓을 때면, 너무 여과 없이 나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때로 나를 두렵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막상 너무도 주관적인 내 이야기를 꺼내 놓은 작품 앞에 선 사람들에게서는, 작품을 보며 각각 자신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곤 한다.
너무도 주관적인 이야기라 생각했던 내 인생 위의 갈등 요소들이, 사실은 인간이기에 겪는 보편적인 갈등이었다. 우리는, 생김이나 시간이 다른 수많은 길 위에 서서 모두가 각자만의 인생이라는 길을 걷고 있다. 내 작품 위 온전하지 못한 이미지들의 조합처럼 보여지는 이미지들을 통해 따라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외부현실이 아닌 내면에 잠시 묻어 두었던 자기만의 특별한 이야기들을 꺼내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우리 각자의 인생 길 아래에는 보편적인 인간의 길이 공통적으로 존재한다.
보여지지 않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는다면 우리는 어쩌면 매 순간의 갈림길에서 갈등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더욱 증폭되었을 내면의 세계에는, 외부로 표현되어지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크기의 상처, 욕망, 감정들이 자리를 틀고 앉아, 매 순간 갈등을 반복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만나야만 하는 반복되는 갈등들을 겪어내면, 그로 인해 새로운 나를 창조해 갈 수 있는 것이다.
갈등의 순간이 눈 앞에 있어도, 그 갈등으로 인한 두려움을 마주하는 사람과, 외면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한번 외면한 갈등은 소멸되어지지 않고, 다시 어느 때라도 나를 찾아온다.
지금까지의 내 작업의 결과물들과 나의 지나온 시간들을 ‘창조적 갈등’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한데 모아 여러분들과의 만남을 갖게 되었다. 모든 갈등은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지금의 나와 여러분이다. 지금껏 내가 겪어낸 갈등들은 내가 지내온 인생이라는 시공간 위에서, 지금을 살고 있는 나를 만들었고, 매 순간 겪는 지금 나의 갈등들은 내가 상상하지 못한 창조적인 내일을 나에게 선물할 것이다. 나를 키워가는 과거가 되는 매 순간의 현재 위에서, 나는 나의 작품을 만나는 사람들과의 동지애와 같은 진정한 소통과 나눔을 꿈꾼다.
나는 한계를 짓는 작업의 규정을 원치 않는다.
앞으로의 나의 작품이 ‘존재의 존재’ 안에서 의미있는 소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한다.
내면적으로, 큰 변화의 소용돌이 가운데 있는 지금,
한계를 넘은 변화의 과정들을 거칠 나의 미래를 기대하며,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과, 소통에서 치유를 통한. 진정으로 살아 숨쉬는 자유와 평화 속에서 행복을 누리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